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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포함 많은 국가에서 여성 지도자가 선출되어 왔지만 정작 자유와 평등의 상징인 미국에서는 아직 여성 대통령이 없다.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야말로 여성 인권사에 큰 획을 그을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첫번째 여성은 아니다. 이미 7명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있었고 그 역사는 무려 18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의 도전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 인권의 신장에 크게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기에 그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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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빅토리아 우드헐 (Victoria Woodhull) — 1872년 출마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였던 우드헐은 여성 인권에 관한 발행물을 통해 법 앞에서의 남녀 평등을 주창했다. 지나친 과격함 때문에 동료 여성 운동가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월 스트리트에 자신의 주식 중개 회사를 설립하고 여행 전문가로 활동하는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1872년 평등권리당 (Eqaul Rights Party) 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그녀는 여성 참정권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지, 사형제 페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녀의 출마는 큰 주목과 호응을 얻는데는 실패, 총 득표수 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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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벨바 앤 록우드 (Velva Ann Lockwood) — 1884년 및 1888년 출마

첫번째 결혼에서 남편과 사별한 록우드는 여성 인권에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남성과 재혼하면서 여성 인권 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이 분야에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조지 타운 대학에 지원했지만 당시 동대학은 여성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아서 실패하고, 대신 내셔날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역시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위 수여를 거부하였는데, 그녀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S. 그랜트에게 편지를 써서 학위를 받아내고야 만다.
졸업 후 법조계에서도 끊임없는 차별에 시달리던 그녀는 1884년과 1888년 두차례에 걸쳐 평등권리당 소속 후보로서 대국 대선에 출마했다. 역시 그녀의 도전은 실패했지만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으로 부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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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마가렛 체이스 (Margaret Chase) — 1964년 출마

체이스는 미국 공화당의 최장수 여성 상원의원이었다. 하원의원이 된 남편 클라이드 스미스 (Clyde Smith)의 비서로서 정계에 입문했고, 남편이 병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자 대신 출마, 당선되었다.
그 후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해서 당선됨으로써 하원과 상원에 모두 진출한 첫 여성 정치가가 되었다. 19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 비록 실패했지만 미국의 메이저 정당의 대통령 선거 출마자 명부에 이름을 올린 첫번째 여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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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셜리 키숌 (Shirley Chishom) — 1972년 출마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그녀는 교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뉴욕에서 아동 보호 센터에서 일함으로써 사회 활동 경력을 쌓았다.
1968년 흑인 여성으로 첫 하원의원이 된 그녀는 소수 민족의 권익 향상과 베트남 참전 반대에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72년 민주당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함으로써 그녀는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되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녀의 입후보 연설은 명연설로 기록되었다.

I am not the candidate of Black America, although I am Black and proud. I am not the candidate of the women’s movement of this country, although I am a woman, and I am equally proud of that. I am not the candidate of any political bosses or fat cats or special interests. I am the candidate of the people.”
나는 흑인이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흑인을 대표하는 후보가 아닙니다. 나는 여성이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여성을 대표하는 후보가 아닙니다. 나는 정계 실력자나 살찐 고양이나 특정 이익 집단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나는 민중을 대표하는 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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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레노라 풀라니 (Lenora Fulani) — 1988년 출마

컬럼비아 대학 교육학 박사 출신인 그녀는 심리학자 및 심리치료사로 활동했다. 아프리카 부족의 이름을 딴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미국의 흑인 사회와 깊은 유대를 가지고 흑인 인권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88년 인종 차별 철폐, 동성애자의 권리 보장, 정치 개혁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신동맹당 (New Alliance Party)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를 선언한 그녀는 미국 50개주 전체에서 지명*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다.
비록 그녀도 실패했지만 전국에서 0.2%의 득표율을 기록, 그 당시까지 최다 득표를 한 여성 대통령 후보로 기록되면서 여성 대통령 도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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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로지앤 바 (Roseanne Barr) — 2012년 출마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월 가의 책임을 물으며 2011년 뉴욕에서 격렬하게 벌어졌던 시위 <월 가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s)>를 기억하는가? 그 시위의 선봉에 섰던 사람 중 하나가 그녀이다.
하와이의 마카다미아 넛 농장주이며 마리화나 애호가이기도 한 그녀는 2012년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에 출연해 녹차당 (Green Tea Party) 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시도는 경선에서 2등에 머무름으로써 실패했다.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평화자유당 (Peace and Freedom Party) 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 0.1%의 득표에 그쳤지만 출마자 중 6위라는 나름의 선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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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질 스타인 (Jill Stein) — 2012년 출마

하버드 대학 출신의 외과의인 스타인은 환경 운동으로 많은 상을 받았다. 매사츄세츠주를 중심으로 활발한 사회 활동을 벌이던 그녀는 유명한 노암 촘스키 교수와 풀리쳐 상 수상자인 저널리스트 크리스 헤지의 지원을 받으며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녀의 소속 정당은 녹차당. 앞서 소개한 로지앤 바를 경선에서 누른 인물이 바로 스타인이다.비록 그녀의 도전도 실패했지만 0.36%의 득표율을 기록, 지금까지 여성 대통령 후보 중 최고의 득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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